이방인

도서명:이방인
저자/출판사:알베르 카뮈/책세상
쪽수:240쪽
출판일:2023-11-07
ISBN:9791159319297
목차
1부
2부
미국판 서문
《이방인》에 대한 편지
해설: 죽음의 거울 속에 떠오르는 삶의 빛
작가 연보
옮긴이의 말(2015년)
옮긴이의 말(1987년)
책 속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_9쪽
점심을 먹고 나자 좀 심심해져서 나는 아파트 안에서 어정거렸다. 엄마가 함께 살 때는 알맞은 아파트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너무 커서 식당의 테이블을 내 방으로 옮겨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내 방에서만 지낸다. 바닥이****간 꺼진 밀짚 의자들, 거울이 누렇게 변색된 옷장, 화장대, 구리 침대 사이에서 말이다. _31쪽
그는 마송과 함께 갔고, 나는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려고 남았다. 마송 부인은 울고 있었고, 마리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았다. 나는 결국 입을 다물어버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_72쪽
나는 그에게 그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 마지막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가로막고는, 벌떡 일어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설득하려 들며 내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_88쪽
그는 내가 보기에도 과장되었다 싶은 어조로 페레스에게,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페레스는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방청객들이 웃었다. 그러자 내 변호사는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다 사실이고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습니다.” 검사는 수수께끼 같은 얼굴로 문서의 제목을 연필로 찔러대고 있었다. _115쪽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거야.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그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들,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들,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거야. _151쪽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 152~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