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하는 한국교회와 한 역사가의 일기
도서명:쇠퇴하는 한국교회와 한 역사가의 일기
저자/출판사:옥성득/새물결플러스
쪽수:440쪽
출판일:2021-04-28
ISBN:9791161291994
목차
프롤로그: 역사가의 일
# 2016년
2014년 올해의 단어 | 2015년 올해의 단어 |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이유 | 미래가 불안한가, 과거가 불안한가? | 전천년설과 사회 참여 | 남반구 기독교의 반격 | 많이 배우고 똑똑한 엘리트는 왜 이기적인가? | 귀추법에 물든 교회 | 표절과 신화 만들기 | 한 사람의 평가는 말년을 보라 | 좋은 책이 없어서 교회가 죽는다 | 직무 유기 | 이단에 물든 한국교회, 회개문 내고 자숙하라 | 4퍼센트 |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 3대가 어찌 같을 수 있으랴? | 파자점 | 30대 초반에게 거는 기대 | 올해의 단어: 물러가라
# 2017년
2017년 개신교 전망 | 아시아 최대 종교는? | 세례 요한은 왜 세습하지 않았나? | 종교와 과학이 따로 노는 동아시아 | 불교 사찰과 기독교 | 올라가는 산은 하나인가? | 한국교회의 부적 | 개천에서 살아남는 게 용하다 | 종교인 납세 | 종교개혁 500주년보다 한국교회 1주년이 중요하다 | 목사들에게 고함 | 평균 연령 60세의 노쇠한 한국교회 | 한국은 크리스텐덤이 아니다 | 한국교회가 양산하는 두 유형의 사람 | 주식회사 루터, 주식회사 칼뱅 | 문자주의의 폐 | 루터의 공동 금고 | 세습 원로 목사의 참회 | 사회적 자본과 세습 | 종교개혁 500주년과 기이한 일 | 종교개혁과 마술 | 나는 누구인가? | 교파 분열과 대형 교회의 등장 | 대형 교회와 성형외과가 잘 되는 이유 | 교회는 사업하는 회사가 아니다 | 신학생들이여, 분발하라 | ‘하나님’ 인플레 시대 | 기독교는 매개를 통해 전달 | 세습 교회의 자선은 언 발에 오줌 누기 | 한국 대형 교회 현상에 대한 인류학적·역사적 설명 | ‘오직 성경’에 대한 오해 | 올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 인생의 공식: 셋 다 취할 수는 없다 | 한국교회는 기생충을 가득 채운 채 달리는 욕망의 전차 | 올해의 단어 1 | 올해의 단어 2: 동물의 왕국 한국 개신교회
# 2018년
NEXT! | 누구에게 세례를 줄까? | 광화문 태극기 집회 | 남성 성범죄 문화: 이 땅의 네피림들 | 장로교회의 실상 | 예수가 땅에 쓰신 글과 미투 운동 | 진보 신학이 부활 신앙으로 연결되는가? | 신학 덕후 현상 | 감리교회의 잃어버린 20년 | 장로교회의 양극화 | 신학교가 사는 길 | 누가 가나****성도가 되는가? | 설교는 비밀 결사 항전 지령 | 한국 개신교의 성장 쇠퇴 순환론 | 배워서 사람 되자 | 한국 개신교는 소수 종교임을 자각해야 | 한국인은 선민이 아니다 | 통합 총회 세습 재판일에 고함 | 통합 목사직 사직 |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적 세습 세력 | 시(詩)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 술이부작에서 술이창작으로 | 한국 기독교 제1과제: 가족주의 극복 | 한국교회에는 왜 이단이 많은가? | 왜 소통이 ****될까? | 한국 기독교사와 중국 기독교사 연구 비교 | 종교개혁 주일에 | 한국교회와 초대형 교회의 미래 | 올해 교계의 말, 말씀, 망언, 궤변
# 2019년
하루를 천년같이 | 역사는 깊다 | 차라리 숙명론이 좋다 | 박문약례: 교회가 사는 길 | ‘기독교’를 청산하라 | 김구는 대부흥 운동의 산물 | 의궤에는 왕이, 제사에는 조상이, 예배에는 하나님이 없다 | 폭풍에도 주무시는 주님 | SNS 가나****성도 | 한기총의 기독교 정권론 | 한국교회 쇠퇴의 4대 요인 | 전도사의 힘 | 교회 세습은 성직 매매이자 적그리스도 행위 | 가나****성도가 양산되는 이유 | 좀비와 3·1절 | 3·1 운동에 대한 내연과 외연의 문제 | 성직 매매는 지옥 8층 말레볼제에 던져질 죄 | 교회 세습, 성경이 금하지 않았으니 해도 될까? | 저울추와 같은 그리스도인 | 샤머니즘 탓인가? | 경전 숭배 |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 | 유자 탱자 망자 | 아멘과 할렐루야의 타락 | 세계 기독교 통계 | 한 집****살리려고 교단이 죽어 | 불안이 매직을 부른다 | 한국 우파 개신교는 파우스트가 되려는가? | 이 시대의 명언록 | 설교 변천사 | 하나님과 세상이 만나는 자리로 가는 교회 | 패밀리 트리 | 60대는 꿈꾸는 때 | 거짓 예언의 한국교회: 전광훈의 대한민국 폭망설 | 대형의 승리 | 올해의 명언
# 2020년
적록 색맹의 극우 한국교회 | 데칼코마니 | 예수의 옷깃, 역사의 옷깃 | 주일 예배를 중단한 경우 1 | 전광훈은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 | 주일 예배를 중단한 경우 2 | 바이러스에 걸린 한국 개신교 | 신학과 신학 서적의 영미 종속ㅍ팬데믹과 한국 기독교 | 실용적 접근과 좀비 교회 | 신(新) 파자 풀이 | 종려 주일 | 교회는 몸, 신학자는 등뼈 | 예배의 중요성 | 코로나 이후의 세상 | 해방 이후 격변의 역사 속 하나님 | 코로나는 지구가 내민 고지서 | 나사로야, 나오라: 한국 개신교 지각 변동 임박 | 팬데믹 이후 한국교회 | 필경연전(筆耕硯田) | 코로나 우울증 | 교회의 실패 이유 | 코로나 시대에 간호하는 교회 | 블루 오션: 한국 기독교 역사 공부 | 내가 어째서? |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조직 개혁****| 말이라는 것 | 기독교 출판사가 번역서를 많이 내는 이유 | 코로나 이후 교회의 활로: 공공재 늘리기 | 일상의 신학자 예레미야 | 우물 ****개구리 | 새 술은 새 부대에 | 서(恕): 코로나 시대 한국교회의 생존 양식 | 기복 종교 | 게으른 자는 | 지도자가 되지 말라 | 스트링펠로우의 책 첫 줄을 읽고 충격을 받다 | 통심불금(痛心不禁): 대부분이 잘못하고 있었다 | 칼뱅과 전염병 확산자 화형 | 신발을 벗을 때: 비대면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는 때 | 5퍼센트도 많다 | 진정한 데모 | 문맹, 질병, 가난의 악순환을 끊자 | 성 지향이 아니라 정치 지향이 한국교회를 망친다 | 교단 총회: 전광훈보다 노인 정치를 퇴출하라 | 한국교회는 예배에 목숨 걸지 않았다 | 지금 본회퍼가 살아 있다면? | 셀피냐 거울이냐: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 예장 통합, 현실을 목도하고 세습 금지 헌법을 준수하라 | 벌거벗은 세습 교회 | 작은 일 하나: 교회 세습과 신사 참배 | 최대 교단의 탄생 | 10만 교인의 탈영 | 행림교회 없나요? |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 이 산에서 저 산으로 | 인생의 좌우명 | 8계명: 한국교회가 사는 길 | 유위와 무위 | 나를 화장해도 내 혀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 천지인 신학 | 올해의 단어
# 2021년
2021년 한국교회 전망 | 생은 항해, 노 젓기의 세 유형 | 땅끝과 대위임령, 사도와 제자 | 기독교인은 범죄율이 낮은가? | 교회 멸망의 원인 | 하나님의 학교 | 에이비슨은 지공주의자 | 두려운 일: 이런 교회가 죽으면 기독교가 살까? | 코로나 사태: 한 달란트의 기회 | ‘ANTI-COVID-19 유엔 카드’ 부적 | 인터콥이 궁금하다 | 윈 형제의 『백 투 예루살렘』 비평적 읽기 | ‘조선의 예루살렘 평양’은 신화에 불과 | 좌파냐 우파냐 | 한국교회의 한 병폐: 본질주의 | 기독교인 유튜버나 일부 목사의 IQ는? | 집요한 저류 | 9월 9일이 문제인가? | 왜 한국인 저자의 책은 읽지 않을까? | 한국 남자의 생애 주기와 불온의 미덕 | 기미년 3·1절에 읽은 성경 구절 | 대형 교회에 호소함: 풍년 7년과 흉년 7년
에필로그: 지금은 한국교회 『난중일기』와 『징비록』을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