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도서명: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저자/출판사:노병구/자유로운상상
쪽수:700쪽
출판일:2007-03-01
ISBN:9788990805348
목차
하늘에 먼저 간 아내와의****속
나의 출생과 가계(家系) | 상경(上京)의 혁명(革命) | 어렸을 때 나는 친일파였다 | 일본의 패전과 해방 | 우리 집의 종교혁명 | 피난생활과 참전 | 제대와 진학 | 서울고등공민학교의 설립 | 5대 민의원선거와 김석원(金錫源) 의원 | 존경하던 이원옥(李原玉) 선생의 낙선 | 맹경옥과의 결혼 | 우리들의 신혼생활 | 김성추 목사님과 이름만 아는 미국인 Reprogel | 나를 너무나 아끼며 도와준 김생수(金生水) 전도사님 | 5.16 군사쿠데타와 서울고등공민학교의 마지막
홍대실 권사님의 도움으로 백운약국을 열다 | 어머니의 떡장사 폐업 |****국을 차린 그해 말에 홍 권사님에게 원금만 갚다 | 지상에서 부르는 오직 하나뿐인 나의 누나 장오룡(張五龍) | 서광섬유의 부도처리 |****국의 이전과 백운독서실, 그리고 우리 집 | 가보시면 압니다 | 초가집 터에 처음으로 집을 짓다 |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 한통숙 전 상공부장관 찬조연설 | 유원종 그리고 안영국과 김인상 | 별것도 아닌 감투싸움으로 장길효 선생에게 본의 아니게 죄를 짓다 | 이재형(李載灐) 선생과 김두한(金斗漢) 씨와의 만남
영원한 나의 스승 유진산(柳珍山) 선생과의 만남 | 예상을 깬 유진산의 승리 | 신민당 중앙 상무위원이 되며 진산계 일원이 되다 | 중구 태평로로 이전해 ‘명성약국’ 개업 | 신민당 선전국 문화부장으로 | 맞으면서 갈비를 먹느니 웃으면서 죽을 먹겠다던 김광주(金光洲) 선생 | 장준하(張俊河) 의원과 “박정희야! 박정희야! 박정희야!” | 유진산 선생의 신민당총재 취임과 김영삼 의원의 40대 기수론 |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 신민당 전당대회 | 제8대 국회의원 선거와 5.6 파동 | 너도 내가 돈을 먹었다고 생각하느냐?
셋째 광우의 탄생 | 구로동의 집 마련과 광우의 발병 | 광우의 치료를 위해 창천동에 전셋집을 마련하다 | 제8대 국회의원 총선과 고흥문(高興門) 후보의 찬조연설 | 유신정치의 시작 | 제9대 유신선거법과 나의 신민당 공천 | 제9대 국회의원 출마 | 500만원짜리 떡 | 대림동에 집을 짓다 | 유진산 총재의 서거 | 고흥문 씨와의 새로운 출발 | 집을 팔고 다시 집을 짓다 | 내 돈 없이 땅을 사고 15만원으로 집을 지어 150만원을 벌다
전당대회와 고흥문 의원의 변신 |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고흥문 최고위원의 깜짝 인사 | 고흥문계의 군산지역 출신 김현기 의원의 위로 | 야당성회복투쟁위원회와 당기위원으로서 나의 역할 | 고흥문 최고위원의 후회와 탄식 | 신민당 5.30 전당대회의 역전 드라마 | 김영삼 총재의 직무정지 가처분 | 김영삼 총재의 국회의원직 박탈 |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서 죽었다 | 10.26 없이 그냥 물러날 수도 없었거니와 만약 그냥 물러났다면? | 신길교회의 구국기도회 | 정치와 경제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 전두환의 제2의 쿠데타(12.12 사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 영등포 을구에서 출마 | 민권당으로 영등포 을구에서 출마 | 정 할 일이 없거든 복권이라도 사라 | 유치송 총재와 신상우 사무총장 | 선거보다 더 어려웠던 가등기 문제의 해결 | 부민농장(富民農場)을 열다 | 김정두(金正斗) 씨와 민권당 간부들 | 김영삼 총재 댁 방문과 새로운 인연의 시작 |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어음사기사건 | 김영삼·이민우·김의택 세 분의 회동을 주선하다 | 전두환의 하야를 요구한 김의택 총재의 기자회견 | 또 다른 민주화투쟁의 시작-대구경북 민주산악회의 결성 | 작년 6월 9일 도봉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했느냐?
민권당의 쇄신과 황명수(黃明秀) 의원 영입작업 | 이민우 회장의 고민 “여름산행을 쉴 것인가, 말 것인가?” | 경찰의 연금과 양도소득세의 감면 | 김영삼 총재의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 | 김영삼 총재 스스로 이뤄낸 연금해제 | 단식중단 | 명우, 성인, 광우의 교육문제 | 민주산악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되다 | 전국 140여 개의 시군구 지부장을 선정, 인준하다 | 민주산악회 본부 산행시 조별 명단 |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상임운영위원이 되다 | 하늘의 뜻 국민의 뜻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 | 민주산악회의 지부결성과 조직활성화 | 강원도 춘천시 지부의 발족 연혁
김영삼 고문의 부민농장 방문으로 이천, 여주 경찰이 떠들썩 | 민주산악회의 전국조직과 광명시 지부 결성 | 민주쟁취의 개척자 김영삼을 추대한다-민주산악회 광명시 지부 창립결의대회 | 통일민주당 창당과 전당대회 부의장 피선 |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와 6.10 국민대회 | 아내 맹경옥의 단독데모와 굉명시 여약사 10명의 지식인 시국선언 | 6.10 국민대회와 전두환, 노태우의 6.29 항복 |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정치지도자의 변명 | 김대중 씨의 4자출마론(四者出馬論)과 평민당 창당 | 통일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광명시에서 출마 | 총선결과는 역시 금권의 승리 | 광명시의 모든 행사는 민정당 윤항열에게 맞춰졌다 | 빚으로 집 명의를 이전해주고 월세로 전환하다 | 구국적 결단의 3당 통합과 통일민주당 지구당의 소멸 | 큰아들 명우의 결혼 | 민주산악회의 조직확대와 문경새재의 기적 | 민주자유당의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와 김영삼 후보의 지명 | 민주산악회의 조직개편과 연수원장 피임 | 992년 민주산악회 중앙간부 연수 | 민주산악회 회직자 명단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윤항열 씨의 당선과 죽음 | 광명시 국회의원 선거 유감(有感)
제14대 대통령선거와 김영삼 후보의 당선 | 청천벽력 같은 민주산악회의 해체 | 광명시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손학규 씨의 공천 | 한국마사회 업무이사 취임 | 나와 아내에게 행복과 평화를 안겨준 한국마사회의 5년 1개월 | 나의 급여통장 관리와 심신의 여유 | 마사회 직원들에 대한 감사 | 모처럼의 해외여행으로 아내 경옥을 즐겁게 하다 | 중국 대련경마장 건설과 중국인 수양딸 왕윈과 사위 서연원 | 간판을 내린 뒤의 광명 민주산악회 | 딸 성인의 결혼 | 김영삼 문민정부의 공과 | 김영삼 대통령은 유일한 민주화의 초석 | 민주동지회의 시작과 역할 | 민주화를 위한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 | 김일성과의 남북정상회담 유감 |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당당히 걸어간 김영삼 대통령 | 2006년도 신년회 | 재혼 | 아버님의 소천(召天)
글을 끝내면서
민주산악회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