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여정남과 박정희 시대
도서명:청년 여정남과 박정희 시대
저자/출판사:정운현/다락방
쪽수:496쪽
출판일:2015-12-10
ISBN:9788978580670
목차
발간사 · 민청학련·인혁당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정화영
추천사 · 변호사 한승헌 / 변호사 강신옥
제1부 : 청년 여정남
·老신부가 최후에 부른 이름들 ·20
·인혁당 사형수 8인 ·24
·대처승의 셋째 아들 ·30
·순박하고 쾌활했던 학창 시절 ·33
·불운했던 대학생활 ·37
·2·28 학생의거 ·40
·가출 ·45
·박정희 맏사윗감 이야기 ·49
·해인사서 수학한 부친 여이섭 ·55
·옛 본적지 ‘예천’ ·61
제2부 : 학생운동과 1960~70년대 상황
·5·16 군사쿠데타와 박정희의 등장 ·66
·정치외교학과 진학과 정만진과의 인연 ·70
·4·19 전후 경북대 학생운동의 흐름 ·75
·박용목과의 만남 ·79
·1960~70년대의 경북대 이념서클 ·87
·한일회담 반대 ‘6·3항쟁’ ·92
·6·4 투쟁과 정지 조건부 퇴학 ·97
·박정희의 장기집권 길 틔운 3선개헌 ·105
·3선개헌 반대투쟁 후 활동 ·110
·총학생회장 직선제 쟁취 투쟁 ·116
·전태일 열사 추도식 추진 ·123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과 ‘어용 총학’ ·128
·교련 강화 반대투쟁 ·133
·정진회 필화사건 ·138
·‘필화사건’ 재판과 재심의 무죄선고 ·147
·‘위수령’으로 대학서 쫓겨나 ·152
·한풍회 창립과 포고령 위반사건 ·157
·혁신계 사람들 ·162
·서도원과 하재완, 그리고 이재문 ·170
제3부 :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 ‘오적’과 ‘민수협’ 결성 ·174
·하재완 장남 가정교사로 입주 ·180
·박정희의 영구집권 **** ‘10월 유신’ ·183
·첫 유신 반대, 서울대 ‘10·2투쟁’ ·188
·전국으로 확산된 11월 투쟁 ·192
·경북대 ‘11·5 투쟁’ 결행 ·195
·개헌청원운동과 긴급조치 1호 선포 ·207
·이재문과의 충돌 ·212
·전국적 학생조직 결성 위해 상경하다 ·218
·유인태 등과의 인연 ·223
·‘강창모임’과 경북대의 ‘3·21’ 투쟁 ·229
·4·3 투쟁의 태동과 3·3·3 원칙 ·249
·서울 부산 대구 오가며 ‘4·3’ 준비 ·254
·4·3 투쟁과 긴급조치 4호 선포 ·260
·검거선풍 불구 ‘2선 조직’ 시도 ·268
·하숙집 나온 뒤 3일 만에 검거돼 ·276
·용공 혐의 덧씌운 민청학련 사건 ·286
·고문으로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 ·294
제4부 : 군사재판과 전격적인 사형집행
·박정희 정권 ‘꼭두각시’ 군사법정 ·300
·민청학련계 징역 240년 ·304
·인혁계, 사형 7명 무기징역 8명 ·309
·피고인 진술도 없이 끝난 항소심 ·315
·“피고인석에 앉고 싶다” ·319
·인혁계는 과연 공산주의자였나? ·325
·하재완의 평양방송 청취 노트 ·335
·‘민청학련’ 명칭의 탄생 ·343
·인혁당 재건위, 과연 실존했었나? ·348
·경락연구회 ·355
·용두사미로 끝난 1차 인혁당 사건 ·360
·몽둥이질에 물고문, 전기고문도 ·368
·협박·고문의 산물, 진술서 ·375
·조작된 공판조서와 유죄 선고 ·382
·기각당한 항소·상고이유서 ·387
· “무덤가에 진달래 심어달라” ·396
·10분만에 끝난 대법원 재판 ·405
·‘설마 하루만에’...전격적 사형집행 ·415
·사형집행명령부 조작과 시신 탈취 ·425
·대구 출신들의 피해가 왜 컸나? ·433
제5부 : 재조사, 재심, 그리고 명예회복운동
·민주정부 출범과 과거사 청산 ·438
·‘인혁당 대책위’ 발족 ·441
·‘의문사위’와 ‘민주화보상위원회’ 출범 ·444
·의문사위, ‘장석구 사건’ 직권조사 ·447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청구 ·452
·재심, 인혁당 사형수 8인 무죄 ·458
·‘김상한 간첩사건’과 재심 승소 ·463
·뒤늦게 시작된 ‘인혁열사’ 추모사업 ·473
·여정남 추모·기념사업과 논란들 ·477
*추모시 · 그대 이름만으로도 밝은, 봄 · 이하석
*일지
*작가의 말 · 정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