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1919
도서명:백 투 더 1919
저자/출판사:오승훈,엄지원,최하얀/철수와영희
쪽수:380쪽
출판일:2020-04-11
ISBN:9791188215423
목차
머리말: 100년 전 ‘오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19년 1일 1일
기미년 밝았다, 온 강토를 광복의 기운으로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간다
“민족자결주의는 당위 명제니 우리의 충정을 모아야 않겠소”
황포강변에 부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의 바람인가
14원 하던 쌀값이 38원? 굶주린 궁민들은 분노한다
■ 해 넘기도록 맹렬한 돌림감기
■ 일본 순사 매질은 조선 사람만 골라 하나?
1919년 1월 2일
일제하 쌀값 앙등, 참으로 참담하다
총독부 무단통치, 임계점 넘었다
패전국 독일… 배상금에 경제난까지 민심 흉흉
쌀값 폭등에 동맹파업 급증…노동자 총궐기 나서나
조선 땅 집어삼킨 동양척식회사
선산에 조상도 못 묻다니
■ 강도랑 한식구 돼서 그리도 감개무량?
■ 돈까스·카레·오무라이스… 서양 맛에 빠진 일본
1919년 1월 9일
재동경 조선 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 결성
동경의 조선인 유학생은 일제의 지독한 골칫거리?
최남선 vs 윤치호… 파리강화회의 논쟁
■ 셜록 홈스가 조선땅에 왔다
■ 부랑자로 검거된 양반들
1919년 1월 16일
김좌진의 탄식 “광복회 동지들이여!”
총독부마저 비판한 친일파들
일본 하층민에게 조선은 기회의 땅
‘붉은 로자’ 옛 동지들에게 피살
■ 세상 놀래킨 무오년의 범죄들
■ 차별 조장하고 뒤로 훈수 두는 총독부
1919년 1월 23일
광무황제 뇌일혈로 21일 급서
외세 앞에 유약했던 봉건제국의 종언
조선인들 충격과 통곡… 독립진영 기민한 움직임
파리강화회의 개막…일제, 민족자결주의 보도 금지
■ “식혜에 무슨 짓을…” 고종 독살설 확산
1919년 1월 30일
천도교 손병희 교주, 독립선언 준비 지시
천도교는 왜 독립운동 앞장섰나
동경 이광수·경성 최남선 ‘독립선언문’ 집필
“동경서도 독립운동하는데…” 경성 청년들도 나선다
■ 조선인 목숨이 하마보다 못하오?
1919년 2월 9일
“세계 만국에 조선 독립을 선언하노라”
‘적국의 심장부’ 아랑곳없이 절로 터져 나온 “만세”
선언문 곳곳 ‘결연한 기백’…왕정과 결별·새 국가 쟁취 선포
사각 모자에 선언서 숨겨…문익점 버금가는 첩보전
독립선언 영향 준 일본의 ‘두 얼굴 민주주의’
하늘도 돕는 신한청년당 독립투쟁
연해주 윤해·고창일 씨, 파리강화회의행
국내서도 ‘독립선언’ 거사 착수…이완용 동참 거부
■ 잇따른 화재에 도깨비불 소문… 흉흉한 민심
■ 독립운동 위해 혼례 열흘 만에 생이별
1919년 2월 14일
‘일제·유교 굴레’ 이중속박, 담대히 떨치고 선 신여성
제발 저린 일본, 사이온지 암살 경계령
조선 여자 임금, 일본 남자 임금의 반의반 토막
■ 19살에 잡지 〈창조〉 창간한 김동인
1919년 2월 21일
경성 학생들, 광무황제 장례 전후 ‘만세’ 거사
여운형의 명문, 일본서도 “새겨들어야”
장덕수 체포, 운명의 장난?
사형 예고에도 의연한 대한광복회원들
‘동경 2·8만세’ 일주일 만에 유학생 아홉 명에 실형
■ 공무원·교사가 꿈인 요즘 학생들
1919년 2월 25일
독립선언 드디어 ‘3월 1일’ 확정
거사 자금은 천도교, 선언서 번역은 기독교가 맡기로
전문학교 학생들, 종교계 독립선언 합류 결정
“사회주의가 곧 반일”… 한인사회당 꿈은 어디로
■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1919년 2월 26일
최초의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결성
각지 독립운동가는 왜 연해주에 모였나
“열강에 독립청원서 전하라” 상해·동경으로 밀사 급파
■ 파리회의 간다던 이승만 미 병원에?
■ 뭐 먹을 것 있다고 동포 등쳐먹소?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최종 확정…이제 ‘거사’만 남았다
친일 첩자 오해로 총 맞은 한용운…민족대표 이모저모
자정까지 2만 1000부 극비 인쇄… 공장 감독도 몰랐다
■ 족보 밑에 숨긴 선언서 발각 직전 정전…위기의 순간들
1919년 3월 1일
유관순과 동기들 “담 넘어서라도”…군중들 경성으로
“거사의 날 밝았다”…친일파 심장부 태화관에서 독립선포
3·1선언서, 세계에 외친 ‘인류평등’…평화와 공존 정신 담았다
‘종이 태극기 물결’ 육조 거리
■ 감시 피해 기차와 인편으로…배포 큰 선언서 배포작전
■ 민족대표 권동진 일본 조선군 사령관과 밀회
1919년 3월 4일
맨손 시위대에 총포…조선은 계엄상태
민족대표 만세삼창 직후 총독부 연행
총독부, “알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
■ 3월 1일 동경서도 대규모 시위 왜?
1919년 3월 6일
경성서 다시, 거침없는 만세봉기
이승만, 윌슨에 위임통치 청원
“서양의 동정을 얻어야” 독립진영 근심거리 이승만
■ “조선인 폭도”…〈아사히〉, 아싸리 정론지 이름 떼라
1919년 3월 18일
독립투사 몰려드는 상해…임시정부 거점되나
해외에서도 ‘대한독립만세’ 함성
“인류 평등 위해 육탄혈전 독립 완성”
우리 대표 김규식 씨, 천신만고 끝에 불란서 도착
■ “조선이 독립했단 게 사실이오?”
1919년 4월 3일
임시정부 각론, 상해서 격돌
국내서도 정부 수립 논의 활발
3·1 한 달…더 거세진 불길
■ 일왕에게 경고하오…19살 유생의 기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신채호의 일갈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
■ 이완용의 적반하장…토착왜구에겐 ‘만세’가 ‘망동’으로 들리오?
1919년 4월 19일
일제, 제암리 주민 30명 교회 가둬놓고 학살
화수리선 순사 죽음 명분 새벽녘 온 마을 태워
선교사들, 참상 고발 앞장
미국 독립의 심장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 일본도에 양팔 잘려도 끝까지 “조선독립 만세”
1919년 4월 29일
만세시위에 빚졌으니 독립전쟁 길 나서리
■ 조선인 수감자들 감옥 안에서도 만세시위 이어가
부록
〈한겨레〉가 뽑은 독립운동 ‘민중대표’ 48인
역사학자 좌담: ‘3·1운동 100년’의 현재적 의미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