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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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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사람과나무사이
원산지 국내산
브랜드 사람과나무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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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의 미술관

    9791188635603.jpg

    도서명:부의 미술관
    저자/출판사:니시오카,후미히코/사람과나무사이
    쪽수:292쪽
    출판일:2022-03-31
    ISBN:9791188635603

    목차
    서문_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명화는 어떻게 부를 창조하고 역사를 발전시켰나?

    제1장_ 빵집 광고로 활용된 페르메이르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ㆍ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왜 16세기 유럽 예술가들의 밥줄을 끊어놓았나
    ㆍ ‘우상 숭배’라는 죄목으로 교회미술을 강하게 탄압한 네덜란드에서 근대 시민 회화가 화려하게 꽃피다
    ㆍ 네덜란드 미술이 종교개혁으로 인한 ‘미술 파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두 가지 비결
    ㆍ 미술이 교회와 왕실의 지배체제 유지를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되던 시대
    ㆍ 17세기 네덜란드를 세계 최강 미술 대국으로 만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기성품 전시 판매’ 전략
    ㆍ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왜 정물화와 풍경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을까?
    ㆍ 가정을 돌보는 평범한 여인이 페르메이르 그림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
    ㆍ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페르메이르 집안의 3년 치 빵값이었다고?
    ㆍ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실제 모델이 페르메이르의 연인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ㆍ 독특한 개성과 참신한 소재로 ‘작품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ㆍ 피카소가 끊임없이 파격적인 기법을 탐구하고 창조한 이유는 사진의 등장으로 화가의 밥줄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는데?!

    제2장_ 천재 중의 천재 다빈치가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ㆍ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모나리자〉와 달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유
    ㆍ 예술가 후원자의 다섯 가지 유형
    ㆍ 인류 예술사 최고의 천재 다빈치가 요즘 취업 준비생처럼 자기소개서를 썼다고?
    ㆍ 〈최후의 만찬〉 제작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한 수도원장을 유다의 모델로 그리려 했던 다빈치
    ㆍ 미켈란젤로의 대작 〈천지창조〉를 다빈치가 그리면 4,000년이 걸린다?
    ㆍ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 〈최후의 만찬〉이 당대에는 실패한 회화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ㆍ 다빈치는 왜 자신의 만년 방랑길의 소중한 길동무 〈모나리자〉를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그렸을까?
    ㆍ 미모의 제****라이와 다빈치 유언장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ㆍ 다빈치의 3년 치 연봉에 달하는 거액을 받고 프랑스 왕실에 팔린 〈모나리자〉
    ㆍ 움직일 수 없는 그림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야 돈도 움직인다?

    제3장_ 렘브란트는 왜 자기 그림을 모사하는 ‘가짜 그림’을 양산했나

    ㆍ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집단 초상화’가 경쟁적으로 그려졌을까?
    ㆍ 16~17세기 네덜란드에 빵집, 푸줏간보다 화가 수가 훨씬 많았다는데?
    ㆍ 렘브란트가 거액의 돈을 투자한 아윌렌부르흐 공방이 모작과 위조로 돈을 버는 ‘가짜 그림 생산 공장’이었다?
    ㆍ 자신의 공방에서 자신의 작품을 모작한 상품을 양산한 렘브란트
    ㆍ 신인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외과의사 조합의 집단 초상화 의뢰를 받은 데에 아윌렌부르흐의 정치적 영향력이 한몫했다는 의혹은 사실일까?
    ㆍ 렘브란트의 최고 성공작으로 손꼽히는 〈야경〉은 어떻게 탄생했나
    ㆍ 골프 회원권보다 저렴했던 ‘더치페이’ 그림값
    ㆍ ‘경제적 성공’이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겨졌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경제적으로 파산한 렘브란트
    ㆍ 만년에 불운이 끊이지 않았던 대화가의 일생
    ㆍ 렘브란트는 왜 ‘렘브란트풍’ 그림을 양산했을까?
    ㆍ 오늘날 선풍적 인기를 끄는 휴대전화 자화상 사진 ‘셀피’의 원류를 17세기 네덜란드 자화상, 특히 렘브란트 자화상에서 찾는 이유

    제4장_ 메디치 가문 지하 금융의 도움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다?

    ㆍ 메디치 은행을 유럽 최고 은행으로 키운 뛰어난 경영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교회와 예술 후원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숨은 이유
    ㆍ 기독교는 왜 그토록 강력하게 이자를 금지했나
    ㆍ 예술 후원에만 몰두하며 가문의 재산을 축내고 메디치 은행을 경영 위기 상황으로 내몰았던 ‘위대한 로렌초’
    ㆍ ‘이자를 이자로 보이지 않게 하는 공작’, 환전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메디치 가문
    ㆍ ‘복식부기’가 다른 때 다른 나라 아닌 12세기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이유
    ㆍ 지하 금융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메디치 가문의 기상천외한 외환 트릭
    ㆍ 메디치가의 금융업은 왜 로마 교황청과 교회 지도자들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을까?
    ㆍ 로마 교황청을 구워삶아 ‘교황청의 금고지기’가 된 메디치 가문
    ㆍ ‘위대한 로렌초’를 야박하게 평가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의 조부 코시모의 정치적 수완과 경영자로서의 재능을 칭찬한 이유
    ㆍ 당대에 그림물감 값보다도 저렴했던 보티첼리의 그림값

    제5장_ ‘신의 길드’와 ‘왕의 아카데미’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시대

    ㆍ 17세기 프랑스 왕실 미술에 학문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촉매제 역할을 한 프랑스 아카데미
    ㆍ 루이 14세는 왜 프랑스 아카데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ㆍ 교황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던 미술품이 왕권의 권위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다
    ㆍ ‘일하는 사람’인 노동자가 아닌 ‘일을 시키는 사람’인 스승의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조합, 길드
    ㆍ 미켈란젤로가 어렵게 교황의 허가를 얻어 석공 길드를 탈퇴한 까닭
    ㆍ 원조 길드는 왜 왕립 아카데미에서 맞아들인 길드 탈퇴 화공과의 밥그릇 싸움에서 밀려났나
    ㆍ ‘신의 길드’와 ‘왕의 아카데미’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시대
    ㆍ 다빈치의 해부도가 책으로 만들어져 대중에 공개되었다면 ‘해부학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라는데?
    ㆍ 길드 측 지도자에게 강의를 의무화하는 꼼수로 길드를 괴롭히고 길들이려 한 왕립 아카데미

    제6장_ 미술의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영리하게 활용한 인물, 나폴레옹

    ㆍ 히틀러를 거쳐 현대 광고 기법으로 이어진 나폴레옹의 이미지 전략
    ㆍ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베토벤이 그의 황제 즉위 소식을 듣고 자신이 악보에 적어 놓은 헌사를 찢어버린 이유
    ㆍ 나폴레옹은 왜 자신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주려는 교황의 손에서 왕관을 낚아채듯 받아 직접 머리에 얹었을까?
    ㆍ ‘상징 이미지 조작’의 끝판왕,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ㆍ 성스러운 정면 얼굴, 기념비적인 옆얼굴, 자연인으로서의 비스듬한 얼굴
    ㆍ 다비드는 왜 황제 나폴레옹을 그린 두 그림 〈나폴레옹 1세 대관식〉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각도를 다르게 설정했을까?
    ㆍ 국민 행복을 위해 분투하는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데 성공한 다비드의 그림 〈튀일리 궁 서재의 나폴레옹〉
    ㆍ 나폴레옹의 야만적인 유물****탈에 의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루브르 미술관
    ㆍ 미술을 총동원한 나폴레옹의 효과적인 이미지 전략을 무용지물로 만든 ‘포도주세 부활 정책’

    제7장_ 폴 뒤랑뤼엘은 어떻게 ‘잡동사니’ 취급받던 인상주의 회화에 가치를 불어넣었나

    ㆍ 폴 뒤랑뤼엘이 인상주의 회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두 가지 비밀 무기, ‘카브리올 레그’와 ‘금테 액자’
    ㆍ 폴 뒤랑뤼엘은 왜 루이 15세 시대의 궁정 양식을 인상주의 회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채택했을까?
    ㆍ 폴 뒤랑뤼엘이 ‘작은 미술관’처럼 꾸민 자기 집을 대중에 공개한 숨은 이유
    ㆍ 인상주의 화가들은 왜 폴 뒤랑뤼엘의 마케팅 전략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반대했을까?
    ㆍ 고객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최고의 진정제, ‘금테 액자’
    ㆍ 귀족 취미와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귀족 기분’을 느끼게 함으로써 판촉 효과를 극대화하는 마법 같은 마케팅 전략
    ㆍ ‘전 세계의 돈줄’ 미국인 부호들의 ‘귀족 콤플렉스’를 절묘하게 공략하여 인상주의 회화를 최고가 상품으로 둔갑시킨 폴 뒤랑뤼엘
    ㆍ 파리 미술품 가격을 치솟게 만든 미국인 수집상들의 사재기 열풍
    ㆍ 인상주의 거품 시대의 막을 열어젖힌 ‘미국 가격’

    제8장_ ‘비평을 통한 브랜드화’가 예술의 가치를 좌우하던 시대

    ㆍ 비평가의 펜대가 움직이는 대로 판매가가 널뛰던 19세기 프랑스 미술 시장
    ㆍ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지평을 새롭게 연 인물, 델핀 드 지라르댕
    ㆍ 미술상 폴 뒤랑뤼엘이 직접 잡지를 발간한 이유
    ㆍ “이제 비평은 비평가를 먹여 살릴 뿐이다”
    ㆍ 소설 『작품』을 통해 ‘비평가의 밥벌이 처세술’을 신랄하게 파헤친 작가, 에밀 졸라
    ㆍ 폴 뒤랑뤼엘은 왜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아낌없이 비용을 쏟아부었나
    ㆍ ‘대중의 상품 지식 부족’이 19세기 유럽에서 비평가의 가치와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ㆍ 기성 제품 판매 전략에서 ‘비평을 통한 브랜드화’가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는 까닭
    ㆍ 폴 뒤랑뤼엘은 ‘인상주의의 발견자’인가, ‘인상주의의 발명자’ 혹은 ‘날조자’인가?

    후기_ 인간의 욕망은 미술사와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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